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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웹칼럼

[3화] - 집에서 ‘노는’ 엄마들

2022-09-08

저의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입니다. 어머니는 정확히 저의 나이만큼 지방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36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직장인이었다는 것이죠! 1980년대 후반, 지방 소도시에서 맞벌이 부부는 그리 흔한 가정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종종 아버지에게 서운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저를 처음 낳았을 때 시댁 식구들에게 일주일에 며칠만이라도 돌봐줄 수 있는지 물었다가 “여자가 집에서 애를 키워야지, 무슨 일을 한다고 그러냐”며 문전박대 당했던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저는 외가에 맡겨져 10년을 지냈습니다.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시댁에서 저런 말이 나온 것만으로도 서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이 되었겠지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는 할 수 있는 말이었던 것일까요? 저는 그때 그 ‘시댁 식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어머니는 지금도 그 누구보다도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은 며느리입니다.

아이의 가치관 형성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직장생활을 하시는 어머니 곁에서, 저는 여자가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에 부모님이 아낌없이 지원해주실 수 있는 이유가 엄마도 돈을 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머리가 많이 컸던 것이죠.

 

 

 


또한 사회적 분위기도 점점 일터에 나오는 엄마들의 수가 늘어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반에서 한두 명이던 맞벌이 가정 자녀가,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면서는 대여섯 명이 되더니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는 엄마가 일을 하신다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져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 어린 마음에 세상이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기에, 엄마들이 일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 좋은 사회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이따금 저와 동생에게 “집에서 노는 엄마들이 부러웠다”면서 “엄마도 집에서 너희들 챙기며 살았으면 우리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10살을 기점으로 외가를 떠나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을 때, 어린 자녀들이 스스로 밥을 차려 먹거나 먼저 잠들어 있는 모습을 안쓰러워하시며 미안하다고 우시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돌봄 서비스와 같은 사회보장제도도 없던 시절 워킹맘의 고충은 제가 같은 부모 입장이 되었다 해도 상상하기 힘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어머니의 그런 마음에 공감하다가, 뜬금없이 제가 어머니께 드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 이제 그런 표현은 해선 안 될 것 같아. 집에서 노는 엄마라는 말.”

 

 

  

 

 

지금껏 1개월 이상 일을 쉬어본 적이 없었던 저도 ‘전업주부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랬던 저의 생각이 180도 바뀌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제가 육아휴직을 내고 전업주부로 생활했던 3개월 동안 저의 생각이 틀린 거라는 걸 알게 된 거죠. 회사에 가지 않는 데도 아이 아침식사 및 등교 준비를 하느라 늦잠 한번 잘 수 없었고,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설거지부터 청소, 빨래 등 뭐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어느 정도 집안일이 마무리되어 시계를 보면 아이 학교가 끝나서 학원에 데려다줄 시간이 됩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했던 익숙한 집안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적 여유가 조금 더 생겼을 뿐 결코 낮에 집에서 ‘노는’ 것이 아닌, 아니 놀 수가 없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e-나라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맞벌이 가정 비율은 전체 유배우자가구 중 46%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낮아서 조금 놀랐습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남녀가 학교를 졸업하면서 경제활동을 시작하는데, 가정을 이루면서 둘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는 비율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이잖아요! 물론 다양한 사유가 있겠지만, 제가 육아를 하며 실감한 바로는 육아와 직장생활이 공존하는 것이 정말 어렵기 때문에 아마 많은 분이 아이를 갖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친정이나 시댁에서 아이를 돌봐주면 워킹맘,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전업맘, 워킹맘 하다가 못 버티고 사직하면 경단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자의에 의해 전업주부를 택하는 분들보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분들이 대다수라는 현실이 담겨 있는 마음 아픈 문장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는 말로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늘 초조하고 미안해야 하는 워킹맘에게 ‘여자가 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라는 말이 절망감을 주는 것처럼, 자신이 하던 일을 이어갈 수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의 벽에 부닥친 전업맘에게 ‘집에서 노는 여자’라는 말은 상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살림을 해보면 아시겠지만 실제로 놀 수도 없는 걸요! 결혼생활을 하며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아이가 어지른 장난감들을 보면서 아내에게 ‘집에서 놀면서 이런 것도 정리 안 하고 뭐했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반성합니다.

저는 가끔 휴가계획 없이 연차를 내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밀린 집안일을 하곤 합니다. 어느 날, 평소와 달리 아침에 편한 옷을 입고 씻지도 않은 채 자신을 배웅하는 아빠의 모습에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오늘 회사 안 가? 좋겠다. 집에서 놀아서.”

 

 

 


저는 잠시 아이를 붙잡고 말했어요. “회사를 안 간다고 집에서 노는 게 아니야! 우리 어제 물총 싸움할 때 입었던 옷을 아직 빨지 못했어. 빨리 세탁하지 않으면 지독한 냄새가 날 걸? 그리고 어제 저녁에 볶음밥 만들 때 썼던 프라이팬, 도마, 칼, 모두 그대로 싱크대에 있어서 어서 깨끗하게 씻어 놓아야 새로운 요리를 할 수 있어. 아! 오늘 낼 독서록 쓰면서 생긴 지우개 가루도 그대로 있으니 아빠가 얼른 가서 청소해야겠다!”

오늘도 편견에 맞서며 일 분 일 초를 치열하게 보내고 있을 전업맘, 경단녀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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